아침 출근하면서부터 ‘그’가 싱글벙글합니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얼마 후 그가 사진 한 장을 책상 위에 내밉니다. 곧 웃음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물개는 지구 많큼 좋와하고 ♥

엄마 ♥ 아빠는 지구 땅 많큼 좋와하고 ♡

하나님은 너무 사랑해요 ♡


‘그’에게는 막내둥이 예쁜 딸이 있습니다. 7살이며 유치원에 다닙니다. 물개는 하얀색 봉제 물개 인형이라고 합니다. 아이는 물개 인형을 하양이라고 부르며 마치 동생처럼 얘기하며 챙긴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머리띠도 씌워주고 밥 먹을 때 옆 자리에 앉히고 잠잘 때는 껴안고 자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물개 인형부터 찾는 아이랍니다. 7살 아이는 대체로 글자를 읽는 게 서툽니다. 그런데 그의 딸은 나름 자기 마음을 글로 썼습니다. 아이는 글자를 소리 나는 대로 적지 않았습니다. 글자를 쓸 때 책에서 보았던 단어들이 어렴풋이 생각났나 봅니다. 아이는 글자를 틀리지 않게 쓰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가 소리 나는 대로 쓴 것보다 틀린 맞춤법이 오히려 재미있고 여러 사람을 웃게 한 것 같습니다. 7살 아이의 순수함과 진심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행복합니다.


이 짧은 글에는 7살 아이의 진심과 고백이 드러납니다. 아이에게 무엇이 소중한 지를 보여줍니다. 첫째는 자기가 가지고 노는 물개 인형입니다. 다음으로 엄마 아빠, 하나님입니다. 7살 아이가 ‘지구 많큼 좋와하고’를 표현한 것이 신기합니다. 아이는 지구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또 지구의 크기를 아이는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요. 아이의 생각은 참 순수합니다. 아이에게 물개는 지구만큼 소중하고 큰 것일 뿐입니다. 아이는 엄청 많이 좋아한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엄마 아빠는 ‘지구 땅 많큼 좋와’ 한다고 썼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어떤 물건에 또 하나가 더해지면 엄청 많아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치 오천 원 지폐 1장보다 천원 지폐 3장을 더 좋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아이가 처음에는 ‘지구 많큼’이라고 했다가 이제는 ‘지구 땅 많큼’이라고 썼습니다. 아이 생각에는 지구가 있고 거기에 ‘땅’이 하나 더해진 것입니다. 사실 아이는 물개 인형을 엄청 많이 좋아 하지만 엄마 아빠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아이는 물개 인형이 있어서 너무 좋은데 거기에 엄마 아빠가 있어서 더 행복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는 ‘하나님은 너무 사랑해요‘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제는 ’좋와하고‘ 에서 ’사랑해요‘로 단어가 바뀌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일까요. 하나님은 엄마 아빠처럼 아이에게 웃어 주고 안아 주고 놀아 주지도 않습니다.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하나님을 ‘너무 사랑해요’라고 합니다. 아이의 단어 선택에 깜짝 놀랍니다. ‘너무’는 보통 사물의 일정한 정도나 크기, 한계가 지나치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어린 아이는 실체를 짐작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나 존재에 대해서 매우 소중하게 여길 때 사용하는 ‘사랑하다’는 단어를 썼습니다. 신기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잠20:11).


아이는 어리지만 성령님이 아이와 함께 하시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아이에게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이 어린 아이를 축복하시는 성경 속의 그 장면이 바로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도 동일하게 실현되는 것 같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막10:14-15). 다 큰 어른으로서 우리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어린 아이와 자녀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믿음의 본이 될 만합니까. 그러하다면 당신은 더할 나위 없이 믿음 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혹시 그렇지 못하다면 당신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는 대적 마귀의 손아귀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당장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믿음을 점검하십시다. “근신하라 깨어라”(벧전5:8)

(2015.6.12 ©광화문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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