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우리 집 안방에는 새까만 천에 덮인 콩나물시루가 있었다. 그 때는 집집마다 콩나물을 손수 길러 먹던 시절이라 이것은 흔한 풍경이었다. 물을 받는 물통 위에 받침대를 걸치고 받침대 위에 시루(바닥에 구멍이 여러 개 뚫린 옹기)를 올린다. 시루 바닥에 깨끗한 볏짚을 깔고 볏짚 위에는 물에 불린 콩들을 놓는다. 마지막으로 새까만 천으로 콩나물시루를 덮는다. 그리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시로 콩나물시루에 물을 듬뿍 준다. 물은 주는 대로 시루 바닥의 구멍을 통해 물통으로 흘러내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콩나물은 쑥쑥 자란다. 이내 시루는 노란 빛깔의 콩나물로 미어터지고 그 콩나물은 어머니의 손을 거쳐 밥상에 올라온다.
“OO 아빠, 요즘 목사님이 좀 달라지신 것 같지 않아요?”라고 아내가 물었다. “당신도 그렇게 느꼈어?” 올해 들어 담임 목사님의 설교가 예년과는 분명 달라졌음을 나도 느낀다. 강단에서 성도들에게 성경 읽기와 기도 생활을 독려하시는 목사님의 모습. 강한 어조로 말씀의 중요성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대해 설교하시는 목사님. 달라진 목사님의 설교 내용들을 묵상하는 중에 불현듯 나의 머리 속에는 어린 시절 콩나물을 기르던 풍경이 떠올랐다. 어느 누가 보아도 믿음 생활과 콩나물 기르기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그런데도 그 때 그 풍경이 나의 뇌리를 스친 것은 어쩌면 예수님이 식물의 비유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성경 본문의 잔상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선 콩이란 식물은 내가 보아도 서로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김생김이 비슷하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하나님 보시기에 나의 눈에 보이는 콩 같을 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비슷비슷한 외모와 닮은꼴의 죄를 짓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콩나물시루 속의 ‘콩’같이 나를 택해 주셨다. 내가 세상을 쳐다보며 돈을 좇고 명예와 권력을 탐할까봐 ‘새까만 천’으로 덮어 보호 하신다. 심지어 하나님은 내가 썩지 않고 실족하지 않도록 나를 위해 친히 콩나물시루 속의 ‘깨끗한 볏짚’이 되어 주신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과거의 믿음과 성경 지식, 지나간 은혜를 붙잡고 살아가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저는 모태 신앙입니다.”, “저 말씀, 내가 아는 거잖아.”, “저도 옛날에 새벽 기도, 기도원 많이 다녔어요.”, “엄마, 아빠도 예전에 봉사 많이 했어.” 너무 감사하게도 많은 이들이 그 때는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열심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났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하나님은 택함 받은 우리가 죄 뿐만 아니라 믿음까지도 과거 속에 붙잡혀 있음을 원치 않으신다. 그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아직도 과거에 만족하여 살고 있다면, 콩나물시루 속의 콩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콩나물시루 속의 콩은 어제 먹은 물 즉, 과거에 만족하며 살지 않는다. 콩조차도 과거에 붙잡힘이 곧 시들고 썩게 됨을 알기에 매일매일 새로운 물을 찾는다. 하물며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람이야.
나는 콩나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한다. 나의 믿음 또한 어떻게 자라는지 하나님께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나의 믿음이 시들거나 썩지 않고 잘 자라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콩나물시루 속의 콩이 매일매일 새로운 물에 의지하여 노란 빛깔의 콩나물로 자라나듯이 나는 매일매일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오늘의 ‘생명수’를 받아먹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내가 매일매일 받아먹은 생명수 말씀들이 “나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게”(히4:12)될 때, 나는 하나님이 쓰시기에 참 좋은 노란 빛깔의 ‘콩나물’로 분명 자라나 있을 것이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2014.12.1 ©광화문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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