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베테랑>이 화제다. 영화 줄거리만으로는 대한민국 현실과 다소 괴리가 있다. 그래도 영화에서는 ‘갑질사회’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재벌 -회장 아들- 을 상대로 주인공 ‘을(乙)’이 통쾌한 승리를 거둔다. 이것을 보려고 천만 국민이 극장을 찾았다. 작년 연말 국민 모두를 놀라게 한 항공기 회항 사건의 발단은 재벌 회장 딸의 ‘갑질’이었다. 얼마 후 백화점 주차요원에 대한 백화점 쇼핑객(모녀)의 ‘갑질’ 사건이 터졌다. 최근에는 일부 국회의원의 자녀 취업을 위한 ‘갑질’이 여기저기에서 드러나고 있다. ‘갑’의 모습들은 다양하다. 2015년 대한민국은 ‘갑질사회’ -우월한 지위를 가진 ‘갑(甲)’의 ‘을(乙)’에 대한 부당한 요구와 이 땅의 불의한 사회구조를 빗댄 말- 라는 신조어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러한 때에 또 다시 종교인의 과세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왜 일까. 여기서 종교인이란 목회자, 스님, 신부, 수녀, 무속인처럼 각각의 종교 활동을 통해서 일정한 소득을 가지는 사람들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들 종교인 ―이하 목회자로 특정 한다. 그 이유는 다른 종교에 비해 유독 개신교 목회자들이 종교인의 과세에 대한 반대가 심하기 때문이다.― 의 과세 문제가 처음 제기된 것은 1968년이다. 시대적으로 1960년대 이전에는 국민 다수가 가난하고 굶주린 시기였으므로 목회자의 소득(살림)은 참으로 구차했다. 그 시절 목회자에게 소득세라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우리나라 국민 소득은 세계 상위 수준이며, 일부 교회의 재정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이들 교회 목회자의 사례금(소득)은 보통 직장인 연봉의 2~3배를 넘어선지 오래되었다.
며칠 전 주요 일간지에 실린 기사 일부를 그대로 옮겨본다.
#1. 서울 ㄱ교회 담임목사 ㄴ씨는 2013년 퇴직하면서 사택으로 쓰던 교회 소유 7억 원대 아파트 1채와 퇴직금 3억 원, 5000만 원짜리 승용차 1대, 1년 치 아파트 관리비와 차량 관리비를 전별금 명목으로 받았다. ㄴ씨는 5억~6억 원 이 교회 연간 수입의 두 배를 훌쩍 넘는 돈을 한 번에 챙긴 셈이다. 심지어 담임목사 시절에 받던 사례비의 80%를 사망할 때까지 매달 받기로 했다. *출처: <한겨레신문> 2015년 8월 27일자 기사 발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34개 선진국이 회원이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만 빼고 모든 회원국은 목회자의 소득에 세금을 부과한다. 100여 년 전 이 땅에 선교사를 파송한 미국, 캐나다, 호주의 목회자들도 목회의 대가로 사례금(급여)을 받고 세금을 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목회자들은 사례금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근로자가 아니라 무한 봉사자이므로 세금을 낼 수 없다며 거부한다. 미국, 캐나다, 호주 목회자들과 우리나라 목회자는 하는 일이 다른가?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목회자 가운데 극소수가 자발적으로 세금(소득세)를 납부하고 있기는 하다.)
최근까지 목회자의 과세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80% 이상이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목회자도 세금을 내야한다라고 답변하고 있다. 목회자들이 과거 가난했던 시절 그들을 배려하여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던 관행을 이유로 아직도 세금 납부를 거부하는 것은 국민의 도리가 아니다. 또한 목회자의 세금 납부는 목회자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이상한 주장은 더욱 설득력이 없다. ‘내 돈은 아깝고 남의 돈은 아무래도 괜찮다는 말인가?’ 아무리 소액일지라도 세금 납부를 좋아할 국민은 한 사람도 없다. 심지어 목회자의 세금 납부는 이중과세라는 주장도 맞지 않다. 이중과세는 동일한 과세 대상에게 같은 성격의 세금을 두 번 이상 과세하는 일인데, 각자의 소득으로 세금이 빠져나가는 근로자(성도)의 통장과 목회자의 통장은 각각이다.
목회자의 과세 문제와 관련된 더 심각한 문제는 여기에 있다. 지난 47년 동안 목회자의 과세 문제는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였지만, 매번 입법 과정에서 유야무야(有耶無耶)되었다. 그 이유는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뒤지려는 정치인들의 약점을 공격하였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은 국회의원선거, 대통령선거를 앞둔 여야 정치인들에게 목회자의 과세 입법 과정에 협력하면 선거에서 반드시 낙선시키겠다고 협박을 가하는 것이다. 깜짝 놀란 정치인은 그들의 밥그릇과 특권을 뿌리치지 못하고 목회자의 과세 문제에서 하나 둘 손을 뗀다. 이런 행태가 오랜 세월 우리 사회에서 되풀이 되었다. 분명 예수님이 가르치신 방법은 아니다. 그러면서 차츰 일부 목회자들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에서 힘 있는 종교인으로 변질되어 갔다. 또한 그들이 교회에서는 똑같은 형제(자매)가 아니라 ‘갑질사회’ ‘갑’의 위치에 스스로 올라섰다. 그런데 그 곳에는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이 있었다. 곧이어 이러한 것들은 넘어지는 ‘갑질’ 목회자들의 단짝이 되었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는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눅18:24)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19:21)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자기 부인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을’(우리)을 살리려고 스스로 ‘갑’의 자리를 버리셨다. 자기 부인의 삶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님처럼 ‘갑’의 자리가 아닌 ‘을’을 섬기는 자리여야 한다. 목회자는 다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목회자는 스스로 섬김의 자리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어떤 목회자도 율법적인 강압이나 강제적인 방법 때문에 목회를 선택한 이는 없다. 일부 목회자의 말처럼 목회는 근로가 아니라 무한봉사라고 공언한다면 더더욱 낮아져야 한다. ‘갑’의 자리에서 섬김은 불가능하고 목회는 없다. 봉사는 섬김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자매)가 한 몸 일진대 어찌 ‘갑’이 있을 수 있고 ‘을’이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형제(자매)를 섬기지 못하면서 심한 조롱과 비방을 일삼는 이 세상의 수많은 ‘갑’들을 어떻게 섬길 수 있겠는가?
이 땅의 목회자들이여!
그리스도인으로서 쪽팔리게는 살지 맙시다.
당신의 소득은 얼마인가? 아니면 사례금으로 얼마를 받고 있는가?
당신의 소득은 투명해야한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는 분이시다. 당신의 소득이 투명해질 때 이 땅의 교회, 교단, 기독교 단체의 소득까지 투명해질 수 있다. 당신은 공정해야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다. 당신이 만약 자신에게 이로우면 취하고 불리하면 거부할 때 세상의 거짓과 불의에 맞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외치지 못하리라. 당신의 소득이 낮을수록 감사하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주님이시다. 당신을 고아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먹이시고 입히시고 채우시는 주님을 경험하리라. 당신은 그 기쁨을 전하고 가르치라. 당신이 이 땅에서 누릴 복이다.
당신과 나의 영혼이 사모하는 그 분을 보라.
그 분에게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그 분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아 2:2)
(2015.9.7 ©광화문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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